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통증에 눈을 떠보니, 물결처럼 일렁이는 천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일렁거림이 멈출 때, 형의 얼굴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짜식! 사무실로 와서 말하지 그랬어? 몸도 약한 녀석이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 길바닥에 쓰러지면 어떡해?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형이 너무 태연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을 해서 나는 살짝 마음이 상했다. 그와 상관없이 형은 말을 계속 이었다.


네가 형한테 실망했다는 걸 안다. 나도 지혜가 싫지 않아. 하지만 정말 놓치기 싫은 좋은 기회가 왔고, 어쩔 수 없이 지혜를 떠나보내야 한다. 네가 알다시피 나는 뒷골목의 양아치로 살아왔다. 그런 내게 내 야망을 이루어질 여자가 나타났다. 나한테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지혜를 많이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내 야망을 성취시켜줄 수 없는 걸 어쩌겠냐?”


그렇게 말하며 형이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는데, 형답지 않아서 슬펐고, 형이 내게 변명을 해서 미웠다. 하지만 형의 메마른 웃음이 너무 안타까워 가슴 한편이 살며시 저려왔다.


나는 병실 천장을 보고 누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앞으로 정말 쓰레기처럼 살아가게 될 거다. 그래서 나는 지혜를 떠날 수밖에 없다. 남자답게 살고 싶다. 정말 폼 나게 살고 싶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게 네 형이다.”


마치 형만 대단한 것처럼 말하지만, 나도 지혜씨도, 어머니와 아버지도 다 알고 있어. 어쩌면 형도 알고 있겠지. 그렇게 그게 대단해? 사랑하는 여자를 버릴 만큼?”


인마! 여자하고 왜 사랑을 해? 그거 여자의 사람놀음에 놀아나는 거야. 사랑하지 말고 만나서 즐겨!”


그때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아주 조금 열린 뒤에 미림이 인형처럼 고개만 살짝 들이밀었다.

미림은 형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에 내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 간다. 여기 특실 입원비 내가 다 냈으니까 내일까지 푹 쉬다가 가.”


형은 그렇게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바보야!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네가 다녀갔다는 걸 알았어. 미안해. 정말 미안한데, 네가 쓰러진 그 시간에 나는 내 짝사랑을 만나고 있었어. 그래서 너무 미안해.”


미림은 침상에 걸터앉더니 내 이마에 손을 살포시 얹고 뚫어지게 내 눈을 쳐다봤다.


그 놈이랑 잤니?”


아프다는 구실로 미림에게 잔인하게 굴어도 될 것 같았다. 마치 그래도 되는 양 나는 뻔뻔해졌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뜨거운 불에 온몸이 덴 것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무슨 소리니? 그런 일은 없어.”


미림은 그렇게 대답을 하더니, 슬픈 눈동자로 한참동안 내 눈을 내려다보았다. 미림의 눈길에는 온갖 감정들이 혼재되어 있었는데, 내가 그 감정을 억누르고 싶다는 이상한 욕구가 꿈틀꿈틀 솟구쳤다.


알았어... 너도 남자구나!”


체념하듯 말을 내뱉은 미림은 천천히 침상에서 일어나더니, 문 쪽으로 걸어가서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런 다음 내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와서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더니 고 내 옆에 가만히 누웠다.


너에게 줄게.”


미림이 그렇게 내 귀에 속삭였는데, 나는 억지로 떼를 써서 갖고 싶은 것을 차지한 떼쟁이가 된 것 같아서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그런 내 마음과는 딴판으로 나는 허겁지겁 미림을 소유하기에 바빴다. 그런 내 자신이 너무 속물 같아서 짜증이 났지만, 그렇게라도 미림을 내 곁에 붙잡아두고 싶었다.


미림과의 정사는 전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욕정에 불타는 기계여서 온몸이 망가져도 좋았지만, 미림은 인상만 찌푸리고 있었다. 미림을 사랑했지만 섣부른 섹스는 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가졌지만 철저히 미림의 짝사랑한테 지고 말았다.


고마워. 네가 처음이라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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