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통의 편지를 받은 것은 출감을 열흘 앞 둔, 그러니까 올해의 겨울이 막 시작되는 입동(立冬)날이었다.


편지의 겉봉에는 현란한 달필의 붓글씨로 知人이라는 두 글자가 정성스럽게 쓰여 있었고, 오른쪽 귀퉁이에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낸 사람의 주소가 꼬물꼬물하게 쓰여 있었다.


그런데 그 知人이라는 보낸 이의 이름도 낯선 것일 뿐더러 강원도 양양이라는 지명 또한 풍문으로나 듣고 지도에서나 보아 온 것이기에 느닷없이 받은 한 통의 편지는 나로 하여금 미열까지 동반한 가벼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출감하시는 날, 부디 겉봉에 적힌 주소로 방문해 주십시오. 당신을 꼭 만나야 할 사람이 그날 그곳에서 기다립니다.



편지의 내용 또한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조리 있게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말만 간단히 표기해 놓았을 뿐, 나를 어떻게 알고 있으며, 왜 나를 꼭 만나야 하는지, 만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았다. 발신인을 알 수 없는 그 편지는 내가 보낸 오 년의 수형 생활 이상으로 남은 며칠을 더 갑갑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에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양양에 거의 다 와서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슬며시 눈을 감았었는데, 어느새 차가 목적지에 닿은 모양이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여행이었다. 굳이 이렇게 여행 아닌 여행을 나설 것인가 망설인 것에 비하면 아주 가뿐한 마음이었다.


서로 먼저 내리려고 아귀다툼하듯 승객들이 너도나도 통로로 나와 서는 바람에 맨 뒷좌석에 앉은 나는 할 수 없이 나중에 내리기로 작정하고 그냥 자리에 앉아서 지는 햇살이 거미줄처럼 눈 밑을 간질이는 차창 밖으로 무연이 눈길을 돌렸다.


버스의 창은 급하게 세차하느라 마구잡이로 흘러내린 비눗물 줄기가 깨끗하게 닦여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붙어 두꺼비 등과도 같은 흉측한 더께의 얼룩이 거뭇거뭇 남아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록 그런 창을 통해서였지만, 나는 한 아름으로도 감싸 안지 못할 정도로 큰 은행나무가 기우는 저녁놀을 받아 불에 타고 있는 듯이 붉게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사실 내가 눈여겨본 것은 결코 은행나무가 아니었다.


나의 눈을 끈 것은 불그레한 은행나무에 등을 기댄 채,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삼십대 중반의 사내였다. 사내는 거의 필터까지 타 들어가는 담배를 얄팍한 입술로 비스듬히 물고 생선 비린내보다 더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 웃음은 언젠가 라스팔마스 근해에서 내 턱을 짓이겨 놓던 갑판장의 그 비비꼬인 그것과 무척 닮아 있었다.


거기, 뒤에 앉은 양반! 안 내리고 뭐해요?”


느닷없이 귀를 울리는 사내의 쩌렁쩌렁한 음성에 차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버스 안을 휘둘러보았다. 그새 다들 내린 모양인지 나를 빼고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다만 버스 기사만이 운전석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자세로 내 쪽을 신경질적으로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기사는 뭔가 한 마디를 더 내뱉으려다가 내 행색이 그리 반듯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는 마지못해 입을 다무는 듯했다.


나는 짐칸에 올려놓은 가방을 내려서 오른쪽 어깨에 걸치며 운전기사를 따라 천천히 버스에서 내려섰다. 운전기사는 미심쩍은 눈길을 연신 내게 던지며 잰걸음으로 걸어 차부로 쓰이는 듯 한 건너편의 허름한 식당으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오래 앉아 있은 탓에 의족(義足)처럼 감각이 없는 다리로 한 걸음을 내딛는데, 매운 손맛같이 아릿한 바람 한 줄기가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어느새 석양마저 집어삼킨 채, 어머니의 치마처럼 물 빠진 회색으로 희부윰하게 바래져 있었다.


나는 나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 사내를 찾아 은행나무 주위를 재빠르게 둘러보았다. 은행나무에 기대어 있던 사내는 담배꽁초 몇 개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은행나무 아래에는 이빨이 하나도 없는 중늙은이가 손녀로 보이는 계집애와 쪼그리고 앉아 계집애가 입에 넣어 주는 과자를 보랏빛이 도는 벌건 잇몸으로 씹어 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주위에 그 두 사람밖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에게로 다가가서 길을 물었다.


, 명수리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명수리? 명수리라면 저 길로 쭉 따라가서 산을 넘어야 재.”


묻기는 계집애한테 물었는데, 대답은 노인이 했다. 나는 노인이 지팡이를 들어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았다. 지팡이 끝에 걸린 길은 마치 꽈배기를 풀어놓은 듯 꼬불꼬불하게 산모퉁이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제법 골이 깊은 산으로 오르는 길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과자를 노인의 입에 연신 넣어 주고 있는 계집아이와 그 과자를 시원찮은 잇몸으로 받아먹는 노인의 희화적(戱畵的)인 풍경을 뒤로 한 채,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산은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추락하다 못해 바닥을 기어 다녀야 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워진 6년 전에 나는 외항선을 타고 라스팔마스로 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항구는 눈앞에 바로 보이는데 거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었다.


거리(距離).


두 점을 잇는 직선의 길이. 이렇게 수학적(數學的)으로 정의를 내려놓지 않아도 내게 있어 거리는 언제부터인지 벗어버리고 싶지만 벗어 던질 수 없는 단 한 벌뿐인 허름한 옷처럼 둔중한 무게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거리에 중량을 더하는 나의 별난 계산법은 시작되었었다.


같이 갑시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 되도록 걸음을 빨리 하는데, 뒤쪽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 왔다. 나는 빠듯한 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다보았다. 언제부터 뒤따라오고 있었는지 웬 사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게로 바짝 다가왔다. 버스 종점에서 담배가 필터까지 타 들어가는 것을 방관하며 은행나무에 기대어 비릿한 웃음을 흘리고 있던 바로 그 사내였다.


사내의 웃음에서 왜 등 푸른 생선과도 같은 비릿한 냄새가 나는지 알 까닭이야 없었지만, 그 야릇한 냄새는 내 몸 켜켜이 배여 있는 이 턱없는 피로감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거라는 느끼한 짐작만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따개비 마냥 내 삶에 달라붙은 피로감은 간단하게 내 앞을 막아서곤 했으니까.


명수리로 가십니까?”


급히 따라오느라 숨이 찬지 사내는 입가에 허연 김을 풀풀 날리며 다시 말을 붙여 왔다. 사내는 불구(不具)였다. 홀례를 붙고 난 암캐처럼 한쪽 다리를 약간 절고 있었다. 불구(不具)와 의도적인 접근. 그 불가사의한 음모(陰謀)의 냄새. 내 삶의 문 밖에 서 있다가 문고리를 잡아당길 기미만 보이면 안으로 들어올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는 이 달갑지 않은 불청객. 나는 늘 그렇듯 재빨리 내 주위에 보호막을 쳤다.


제가 명수리로 가고 있는 지 어떻게 아십니까?”


나는 나의 소심함에 거센 반발을 일으키며 그렇게라도 물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목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져 전에 없던 비음(鼻音)을 내고 있었다.


명수리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길을 지나야 하지요. 요전에는 저수지 옆을 끼고 돌아가는 지름길이 하나 있었지만, 재작년 산사태에 그만 막혀 버렸지 뭡니까.”


사내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다시 한 번 내 자신의 용렬함에 조소를 보냈다. 운명이라는 가혹한 덫을 비껴갈 수만 있다면 용렬함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좋다는 생각은 소심한 내 성격에 아주 걸맞은 처세술이었다. 그것은 어쩐지 자주 불운이라는 불청객에 치이던 내 삶과도 잘 융화될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믿음마저 주었다. 시큼한 구토가 일 듯 한 메슥거림을 자주 주기도 하지만…….


사내와 시답잖은 길 이야기를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걸어가는 사이에 벌써 날은 컴컴해져 있었다. 어두워지자 왠지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아니다. 어둠이 아니라도 나는 이미 너그러워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교도소에 있던 오 년 동안 어느새 어둠이라는 존재에 익숙해져 버린 모양이었다. 어쩌면 교도소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외로움에 더해 너그러움을 애완견처럼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외로운 자가 으레 너그러움에 길들여져 있듯이.


눈이 오는군요. 올 겨울 들어서는 첫눈이 되지요.”


두어 발자국 정도 뒤에서 걷고 있던 사내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나는 움츠렸던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치 잔별을 대신 하듯 실밥 같은 눈이 바람에 날려 텅 빈 들판 위로 하늘하늘 흩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눈 내리는 폼이 영 심상치 않군요. 여긴 눈이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대개가 폭설이거든요. 하여튼 서두릅시다.”


사내의 목소리는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묻혀 먼 곳을 에돌아 아득하게 날아들었다. 그 아득함 위로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개를 치며 논바닥으로부터 솟구쳐 올랐다.


아직 산길로 접어들기도 전인데, 눈발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사내의 말처럼 폭설이라도 내리려는지 회오리바람까지 덩달아 일어났다. 사내는 다리를 절룩이면서도 나를 앞질러 걷기 시작했다. 전부터 자주 다니던 길이었던지, 사내는 더듬거리지도 않고 잘도 걸어 나갔다. 어두워진 길에 행여 발을 헛디딜 새라 조심하면서, 나도 사내를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걷기 힘들 정도로 다리가 휘청거릴 지경에 이르러서야 우리 두 사람은 겨우 산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이미 눈은 시커멓던 하늘을 온통 하얗게 잡아먹고 있었다. 벌써 눈은 발목을 삼킨 뒤였다.


이거 야단났네요. 아무리 눈이 많이 온다지만, 오늘처럼 많이 내리기는 몇 년 만에 처음입니다.”


아직 멀었겠죠?”


그럼요. 이제 막 산길에 접어 든 건데요. 안 되겠어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작은 산막(山幕)이 하나 있는데, 일단 거기서 쉬어 가기로 합시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사내의 말과는 달리 미끄러지고 엎어지면서 족히 두 시간 여를 걷고 나서야 비로소 사내가 말한 산막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말이 산막이지 겨우 비나 눈을 피할 수 있게 판자와 널빤지를 얼기설기 엮어놓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움막에 불과했다.


사내는 움막 한가운데 놓인 시커멓게 그을린 양철통에 명태처럼 비쩍 마른 장작을 몇 개 집어넣고 불을 지폈다. 장작이 잘 말라 있었던 탓으로 불은 쉽게 일어났다. 나와 사내는 눈에 젖은 겉옷을 벗어 불가에 둥그렇게 널었다.


우선 한 잔 합시다.”


사내가 어깨에 걸치고 온 낡은 가방에서 소주병을 하나 꺼내 놓았다. 그리고 외투 주머니에서 파닥파닥한 은박지에 싼 구운 오징어 한 마리도 같이 꺼냈다. 오징어는 추위로 인해 잔뜩 움츠린 내 지친 몸과 마음처럼 오그라질 대로 오그라져 있었다.


추울 땐, 소주 한 잔 하는 거만큼 괜찮은 게 없죠. 이럴 때를 대비해 종점에 내리면 늘 소주와 오징어를 사곤 하죠.”


사내는 먼저 소주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내게 병째 건네주었다. 나는 사내가 오징어 다리 하나를 찢어 내는 것을 보며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독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식도가 다 타 버리는 것 같은 화끈함에 눈물이 왈칵 솟구쳐 나올 것 같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최인주라고 합니다.”


저는 김영수라고 합니다.”


사내가 담배도 한 대 건네주었다. 나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가슴 한 편에 불이라도 지핀 듯 온화한 기운이 온몸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도소에 있는 동안 거의 술, 담배를 접해 보지 못해서 그런지 술 한 잔과 담배 한 개비에 취해 사내의 얼굴이 여러 개로 겹쳐 보이면서 꼭 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러웠다.


다리는 언제부터 그렇게 되셨습니까?”


다 여자 때문이죠.”


조금 길어지기 시작한 침묵을 깨려고 실없이 내가 불쑥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여운이 꼬리를 길게 끄는 사내의 대답을 듣는 순간, 괜한 것을 물었다는 뒤늦은 후회가 슬며시 일어났다.


여자가 하나 있었지요. 밀랍같이 반지르한 피부를 가진 여자였습니다.”


사내는 술이 취한 것도 아닌데 아주 낯선 목소리를 냈다. 꼭 발정한 암고양이 같은 소리로 그르렁거리는 사내의 목소리는 모래 위에 뿌려진 한 바가지 물처럼 땅 속 깊숙이 꺼져 달아났다. 그리고 사내의 목소리가 흔적도 없이 스며든 그곳에서 은정의 말간 얼굴이 새순처럼 새록새록 돋아났다.






제 소설이 이번 공모에서 탈락된 이유를 수긍할 수가 없어요. 그것도 본심이 아닌 예심에서요. 예심은 학보사 기자들끼리 본다면서요?”


파마 기라고는 전혀 없는 긴 생머리에 동그란 두 눈을 가진 여학생이 입에 거품까지 물어 가며 그렇게 따지고 들었을 때는 정말 아찔하기까지 했었다.


매년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학보사(學報社) 주최로 시와 소설, 수필과 논문들을 현상 공모했었다.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모였지만, 그 응모에 당선된 많은 선배들이 문단에 등단해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 권위가 높아졌고, 더불어 자신의 창작물을 응모하는 문청(文靑)들의 수가 늘 수밖에 없었다. 응모작이 많은 까닭에 학보사 기자들에 의해 일 차 예심을 거쳐 단 몇 편만이 기성 작가와 평론가가 심사하는 본심에 올라갔다.


그런 예심에 자기의 작품이 떨어졌다고 그 현상 공모의 책임을 맡은 내게 이의(異意)를 제기하고 나오니 사뭇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여학생이 바로 문예창작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은정이었다.


사실 은정의 작품을 처음 대하는 순간, 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어학연수를 받다가 제 3국에서 만난 북한의 남학생과 남한의 여학생이 서로의 체제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아프리카로 가서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꿈꾸는 내용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구구절절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그 글을 나만 먼저 보고 얼른 내 책상 서랍 깊숙이 집어넣었던 것이다. 엄격히 보도 통제가 되고, 학보까지 사전 검열을 받던 그 시절에 그런 체제 비판적인 소설을 학보에 싣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한 소설이 어찌 동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건 죽은 글이에요. 아픔에 동참하지 않는 작가 역시 죽은 자일뿐이죠. 공허하고 조악한 언어의 나열로 짜인 한 권의 책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아픔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요?”


은정은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벼락을 맞아 시커멓게 탄 속을 드러내고 있는 교정의 한 구석에서 다부지게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내 속도 검게 그을린 은행나무의 속살처럼 그렇게 타 들어가고 있는 뜨악함을 느꼈다.


가을로 접어 든 교정은 그림자를 길게 땅 속으로 밀어 넣고, 하늘은 한없이 깊어져 가고, 나는 자꾸만 땅에 눕고 싶어졌었다. 한 줄기 바람이 코끝에 매달린 알코올 냄새를 살며시 건드리고 지나갈 때, 은정과 함께 그 밤 깊숙한 곳으로 꺼져 버리고 싶었다. 은정을 안고 귀뚜라미가 자지러지게 울어 지치는 산 속 깊숙이 파묻히고 싶었다. 은정도 내 마음 같았는지 우린 별빛을 받으며 은행나무 아래에 마른풀처럼 드러누웠다.


밀랍 같았지. 꼭 양초를 빚어 놓은 것 같은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여자였어.”


사내는 내가 먼 추억 속으로 여행을 하는 동안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 중얼거림은 내게 향해진 것이었지만, 나는 회색 빛 추억의 포로가 되어 과거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방금 사내가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내가 어떤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밀랍같이 뽀얀 피부를 가진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여자는 언제나 우울했어요. 그 여자의 얼굴만 보면, 아하! 이게 우울이군, 하고 금방 알아챌 만큼 우울을 무슨 귀걸이처럼 달고 있었지요.”


사내는 소주를 병째 들어 거침없이 또 한 모금을 들이켰다. 술을 넘기는 사내의 목젖이 위 아래로 두어 번 꿈쩍였다. 사내는 입 언저리에 묻은 소주를 손등으로 슬쩍 닦아 내며 오징어 몸통을 두 손으로 찢어 입에 물었다.


핏기 없는 웃음마저 내겐 천사의 미소처럼 여겨지던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이 공장 한 켠에서 재봉틀이나 돌린다는 게 여간 안쓰럽지가 않았죠.”


나는 사내의 이야기가 그저 그렇고 그런 신파조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공장 여공과 작업반장의 애틋한 순애보. 둘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생이별을 하고. 아쉬움만 남는다. 나는 내 나름대로 그렇게 스토리를 죽 꿰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특별했어요. 그 여자한테만 있는 특별한 무엇이 늘 나와 그녀 사이에 놓여 있더란 말입니다. 마치 기차 레일의 일정한 간격처럼 그녀와 나의 사이에는 긴 평행선이 가로놓여 있었지요.”


움막 바깥으로는 눈 내리는 소리가 사브작사브작 들리고, 사내가 피우는 담배 연기는 타오르는 장작 불길에 타닥타닥 사그라지고 있었다. 사내는 피우던 담배를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양철통 속에 집어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끌리더란 말씀이야. 자꾸만 관심이 가는 걸 나더러 어쩌란 말이오?”


사내의 그 말은 나에게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사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소변을 보러 가는지 구멍이 숭숭 뚫린 판자문을 열고 밖으로 비적비적 걸어 나갔다. 사내가 나가자, 반쯤 열려진 문틈으로 눈발과 함께 차가운 바람이 세차게 밀려들었다. 나는 고개를 움츠리며 불 가까이 바짝 다가앉았다. 그러자 모닥불에 원고지를 한 장 한 장 던져 넣던 은정의 광적인 모습이 불길 사이로 어른거렸다.


이 척박한 세상에 문학이 과연 무슨 구실을 할 수 있을까? 방구석에 처박혀 써 갈겨 댄 이것들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세상 밖으로 나가면 금방 시들어 죽고 말 거야. 차라리 내가 죽여 버리는 게 나아. 그게 더 나아.”


은정은 그렇게 되뇌며 마른 낙엽을 태우듯 원고지를 한 장씩 태웠다. 은정은 이미 현실 참여 쪽으로 마음을 굳힌 듯했다. 그 결심의 일환으로 그간 그녀가 써놓은 글을 태우는 것이었다. 나는 간혹 시위 대열에 섞여 전경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면,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약 먹은 쥐새끼처럼 비실거리며 도서관으로 줄달음치곤 했었다.


이제 글 따위는 안 쓸 거야. 나보다는 형이 글을 써야 해. 형처럼 냉정한 사람이 글을 써야 해. 난 틀렸어. 나처럼 감상적인 사람은 다 틀렸단 말이야.”


은정은 그렇게 문학을 버렸다. 은정이 자의(自意)에 의해 문학을 버리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학을 버리고 말았다. 아니, 학업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내게 있어 유일한 혈육인 형이 그만 이름도 모르는 병으로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던 것이다. 졸지에 나는 형과 형수와 조카들의 부양자가 되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형의 병원비를 벌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얼마 가지 못했다. 휴학을 하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영장이 덜컥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입영한지 삼 개월 만에 형이 숨을 놓고 나자, 형수와 조카들은 별 수 없이 형수의 고향인 거문도로 내려가고 말았다. 그것이 형수와 조카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수 없이 형수와 조카가 있는 거문도로 내려가려고 마음먹었지만 어찌된 일인 지 그때마다 일이 틀어져 거문도 행을 가로막았고, 간절하게 보고 싶은 생각에서 조금 비켜나자, 형수와 조카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던 것이다.


공장에 대대적인 파업이 있었죠. 위장 취업한 한 여대생을 해고하는 것으로 불이 붙기 시작한 태업은 파업으로, 근로자들의 공장 점거 농성으로 이어졌지요. 그때 저는 보았습니다. 상미의 얼굴에 피어나는 희열과 의지를 말입니다. 시든 할미꽃 같던 그녀의 뺨에 장미꽃 같은 홍조가 물들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녀는 투사가 되었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는 전면으로 부상했어요. 소극적이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강철 같은 의지력을 가진 투사로 거듭 납디다.”


바깥의 차가운 기운과 젖은 눈을 잔뜩 묻히고 들어온 사내는 담배를 새로 피워 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사내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생각들을 잊으려고 거푸 소주병을 입에 가져다 대는 바람에 다소 취기가 올라 있었다. 그런 취기 때문에 사내의 목소리는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높게 공명되어 들렸다.


사내가 상미라는 여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동안, 나는 은정의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밤이면 술이 거나하게 취해 내 자취방을 찾던 은정은 신문 맨 아랫간에 시위를 배후에서 주도한 혐의라는 한 줄 기사로 장식되어 교도소로 처박히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은정이 구속되었다는 기사가 실리던 날, 나는 시답잖은 시비 끝에 한 사내를 폭행하고 구속되었었다.


결국 구사대가 투입되었지요. 구사대는 일부 직원들과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동네 깡패들이었어요. 나도 구사대에 끼여 농성장으로 뛰어들었어요. 농성장은 3층 건물의 맨 꼭대기였지요. 구사대에 의해 내몰린 근로자들은 모두 창문에 매달려 있었어요. 상미도 창문틀에 발을 올려놓고 밑으로 뛰어내릴 듯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어요. 나는 느꼈습니다. 상미가 결국 아래로 뛰어내리고 말 거라는 확실한 예감을 말입니다. 나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그녀를 끌어안았죠. 그리고 우리 둘은 아래로 떨어졌어요. 그때부터 제 다리가 이렇게 되었지요.”


나는 사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출감을 며칠 앞두고 내게 보내진 이상한 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편지를 보낼 만한 사람을 떠올려 보려고 아무리 기억의 잔해를 뒤적여 보아도 나를 만나기 위해 굳이 편지를 보낸 그 知人이라는 사람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知人이라는 인물이 혹시 은정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은정이 이 산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서 산을 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폭설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사건 이후로 상미와 나는 회사에서 해고되었지요. 공교롭게도 상미에게는 다른 연고(緣故)가 없는 것 같았고, 내게 빚을 졌다고 생각했던지 우린 자연스럽게 방을 하나 얻어 같이 살게 되었어요. 하지만 상미는 다시 예전의 우울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갑판장은 내게 해죽이 웃었다. 반쯤 부러진 앞니 사이로 침에 번들거리는 혀가 왠지 구역질나게 느껴져 나는 그를 외면했다.


그냥 바다에 던져 버리면 끝이라니까. 누가 알아? 내 평생 은인으로 깍듯이 모실 테니 그냥 모른 척하라고. 내 말대로 해. 그러면 넌 이제부터 재수가 확 피는 거라고.”


갑판장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내게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바다보다 더 비릿한 피 냄새가 묻어나고 있었다. 난간에는 김 씨의 시체가 세탁한 빨랫감처럼 걸쳐져 있었다. 별 하나 없이 지독히도 어두운 밤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도 그런 밤바다처럼 지겹게도 어둠과 인연이 깊다는 생각을 언뜻 했었다.


죽어 마땅한 새끼야. 화투 패를 숨겨 가지고 계속 속임수를 썼다고……. 못 본 척 해. 전에도 한 놈 수장(水葬)을 시킨 적이 있어. 물속에 처박아 버리면 끝이야. 누가 알아? 곧 고기밥이 될 건데. 눈감아 줄 거지?”


갑판장은 사정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의 말은 다분히 위협적이었다. 다가오는 놈의 몰골이 흡혈귀처럼 보였던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죽어 난간에 걸쳐져 바다 쪽으로 고개를 처박고 있는 김 씨가 가련한 흡혈귀의 희생양처럼 느껴진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 머리가 갑판장의 얼굴을 들이받은 것은 나도 깨닫기 힘든 순식간의 일이었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픈 가운데 눈에 띈 것은 죽은 김 씨의 옆구리에 박혀 있는 칼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 칼을 뽑아들었다. 갑판장은 코에서 피를 흘리며 겁에 질려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그때 갑판장이 전에 나를 심하게 때린 적이 있다는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디선가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칼을 든 내 어깨를 강하게 후려쳤다. 그 강한 바람에 밀려 칼을 든 내 팔이 앞으로 쑥 밀려나갔다. 손가락 끝이 무언가를 뚫고 들어간다는 느낌에 아울러 갑판장의 신음이 비릿하게 쏟아졌다.


검사(檢事)는 강한 바람에 밀려 갑판장을 찔렀다는 내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전에 읽은 적이 있다는 카뮈의 <이방인>을 내가 흉내 내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강렬한 햇살에 눈이 부셔 총을 쏘았다는 뫼르소의 말을 내가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 검사는 나를 간교한 지능범으로 몰아붙였고, 나와 갑판장이 공모해 김 씨를 죽였고, 내가 갑판장을 죽이고, 두 사람이 다투다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인으로 위장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그 증거로 내가 언젠가 갑판장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적이 있다는 것과 내가 읽고 있던 추리소설들을 예로 들었다. 그 소설들에는 그런 종류의 범죄와 음모와 트릭들이 부지기수로 열거되어 있었다. 이미 내게는 지난 시절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폭행 사건이 두 개나 기록되어 있었고, 나는 파렴치한 상습범이 되어 5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형은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있소?”


사내의 느닷없는 물음은 더럽고 냄새나는 교도소로부터 눈이 내리는 산막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나는 사내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혹시 사내가 나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정말로 사람을 죽인 적이 있나 이 말이오.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살인을 해 보았냐는 말이오. 제길! 난 얼마 전에 과실로 사람을 하나 죽였소. 그리고 지금은 한 사람을 고의로 죽이러 가는 길이오. 한 놈을 또 내 의지로 죽여야 한다, 그 말이오.”


사내는 불 속으로 침을 탁 내뱉었다. 침은 양철통의 위쪽에 달라붙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했다. 누렇게 변색되어 가는 침의 흔적은 날이 갈수록 푸석해져 가던 은정의 얼굴빛과 많이 닮아 있었다.


글을 쓸 사람은 형이야. 나중에는 형 같은 소심한 사람만이 살아남아 글을 쓰게 될 거야.”


은정은 그렇게 한편으로는 나를 비난하고 또 부추겼지만, 나는 글을 쓸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응모한 전국 고교 백일장에서 어쭙잖은 단편소설로 장원을 한 이후로 나는 제대로 습작조차 하지 못했다. 학보사 편집 일이 어느 정도 적성에도 맞았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학점에 지나치게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학업의 포기를 의미했고, 또한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내게 있어 문학은 결코 장밋빛 낭만이 아니었다. 문학에 몰두하기에 내 현실은 무릎이 해이도록 바닥을 기었고, 열정 또한 생활의 무게만큼 제풀에 알아서 줄어들었다. 어서 학업을 끝내고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취직하는 것이 그 당시 나의 현실에서는 구원의 희망이었다. 그 소망 또한 내 능력이 감당하기에 벅찬 것이었으므로, 나는 지극히 억눌린 상태에서 지옥과도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고, 멀리 보면 산과 강이 있고, 내 곁에는 언제나 은정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은정을 붙잡으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녀의 고독을 이해하기에는 내 고독이 너무 컸고, 그녀와 함께 시대를 아파하기에는 내 개인적인 소사(小事)가 높은 장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 나는 형이 노트에 습작한 작품들을 다 읽어보았어. 정말 대단했어. 형은 소질이 있단 말이야!”


은정은 내 자취방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막걸리 병을 갓난아이 젖병처럼 입에 물고 있었고, 나는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중요한 리포트가 있어서 밥상과 겸용으로 쓰는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참고 서적을 뒤적이고 있었다.


제발! 유난 좀 떨지 마. 그깟 장학금 못 받는다고 죽지는 않아!”


느닷없이 터진 고함에 나는 고개를 돌려 은정을 쳐다보았다. 은정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무섭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볼펜을 든 자세 그대로 은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형은 똥을 누다가도 장학과에서 오라면 얼른 옷을 주워 입고 장학금을 타러 갈 인간이야. 하지만 장학금과 대학 졸업장이 형의 구질구질한 영혼을 구해 주지는 않아. 형은 글을 써야 돼. 나는 알아. 언젠가는 형이 글을 쓸 거라는 걸. 형의 가여운 영혼을 구하는 길은 글을 쓰는 것뿐이라는 걸 형 자신도 잘 알고 있잖아!”


은정은 내가 쓰고 있던 리포트 용지를 잡아채서 갈가리 찢으며 소리쳤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안개처럼 번지고 있었다. 나도 울고 싶어졌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마냥 서럽다는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 층층이 골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 나는 책꽂이에 꽂힌 두툼한 대학노트들을 쳐다보았었다. 고교 시절 틈틈이 끼적거린 습작들이 빽빽이 적혀있는 그 노트는 벌써 몇 년째 한 번도 펼쳐지지 않아 낡은 문풍지처럼 누렇게 탈색이 되어 있었다. 그 탈색된 빛깔의 농도만큼 나와 문학과의 거리는 벌어져 있었다. 뚜껑을 열면 마지막 남은 희망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판도라의 상자를 경원(敬遠)하듯 탈색된 대학노트를 펼치기에는 내 정신은 심한 상실감 속에 던져져 있었다.





이게 뭔 줄 알아?”


사내가 취해서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취해서 그렇게 들리는 것인지 건너오는 사내의 목소리는 혀 짧은소리를 내고 있었다. 혀 짧은소리에 맞혀 들려오는 사내의 반말은 그리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았다. 사내는 그렇게 지껄이며 기다렸다는 듯이 외투 속주머니에서 칼 한 자루를 꺼냈다.


칼은 반쯤 무너진 사내의 목소리와는 달리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라스팔마스 근해에 자주 출몰되던 상어의 날카로운 지느러미처럼 강렬하게 번쩍이는 칼은 내가 갑판장의 두꺼운 뱃가죽을 찢어 놓은 그 칼처럼 보였다.


자그마치 6년을 갈아 온 거지. 그 놈을 죽이기 위해서 매일 숫돌에 갈다 보니, 길이가 반 뼘이나 줄었지 뭐야…….”


그렇게 어금니를 악물고 지껄이는 말투는 갑판장을 닮아 있었고, 죽기 직전의 형을 닮아 있었고, 원고지를 태우던 은정의 싸늘한 표정을 닮아 있었다.


그 사람을 왜 죽이려고 하지?”


그렇게 묻는 내 혀는 형편없이 꼬부라져 있었고, 사내는 마치 아이가 소중한 인형을 만지듯 손끝으로 칼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있었다.


제길! 상미는 딴 놈의 애를 배고 있었지. 난 벌써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지. 상미를 잃고 싶지 않았거든. 상미는 남의 애를 낳고 나서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 그녀에게 글재주가 있었을 줄이야. 번번이 미역국을 먹으면서도 여기저기 응모를 하더군. 난 남의 애를 키우며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여자와 살았어.”


사내의 목소리는 둥지를 습격당한 성난 벌떼처럼 윙윙거렸다. 낡은 선풍기에 입을 바짝 가져다대고 부르는 노래 소리와도 흡사했다.


내가 허깨비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상미가 낳은 아이의 진짜 아버지가 미워지기 시작했지. 그래. 나는 상미가 내게 등을 돌리고 글을 쓰고 있던 그 시간 이상의 증오를 키웠던 거야. 그렇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사내에 대한 원한을 키웠지.”


어쩌면 은정도 이 사내처럼 내가 그녀를 유기한 그 세월 이상의 증오를 키웠던 것인지도 몰랐다. 나의 철저한 무관심과 짓누르는 고독 속에서 몸부림쳤는지도. 그래서 밤이면 밤마다 찰거머리처럼 내게 달라붙었던 것인지도.


어느 날부터인지 상미는 글쓰기를 포기하더군. 그리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어. 그렇게 하루 이틀 집을 비우는 날이 늘기 시작했어. 나는 그때 새로 시작한 공장일 때문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지. 하긴 내가 신경을 쓴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사내는 가방에서 다시 한 병의 소주를 꺼냈다. 이빨로 물어뜯듯이 병뚜껑을 딴 사내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벌컥벌컥 소주를 들이켰다. 그러더니 신경질적으로 소주병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엉겁결에 소주병을 받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모든 게 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이렇게 되기 위해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었던 거야.”


사내는 반쯤 얼이 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은정이 내 곁을 떠나며 내뱉던 말만 귓가에 쟁쟁할 뿐이었다.


형은 늘 떠나고 싶어 하지. 형의 얼굴엔 늘 바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거든. 바람처럼 떠돌고 싶은 눈치가 역력하거든. 어쩌면 세상을 떠돌며 살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결국은 돌아오게 될 거야. 형이 있어야 할 자리로 반드시…….”


사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은정이 남긴 말처럼 이미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처음 만난 사내와 마주 앉아서 사내의 여자 이야기를 듣는 것도, 그 여자 이야기를 들으며 내 여자를 생각하는 것도 이미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전신을 지배했다.


사고였어. 내가 상미를 때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 물론 내가 증오한 것은 상미를 버린 사내였지, 상미는 아니었어.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아주 잠깐 상미를 미워한 적은 있지만, 상미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 나는 그녀를 정말 사랑했거든.”


그렇게 말을 한 뒤, 사내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와 나 사이에는 침묵만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의 침묵 위로 눈 내리는 소리가 살포시 들렸다. 환청이 아니었다. 눈 내리는 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내 귀에 들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어느새 스르르 감기는 내 눈꺼풀 위로 차곡차곡 내려앉았다.


애타게 소리 높여 무언가를 불렀다는 느낌과 숨이 막힐 듯이 목이 졸리었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지독한 갈증을 느꼈다. 마실 것을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데 딱지처럼 접힌 메모지가 포장지로 싼 두툼한 종이뭉치 위에 놓여 있는 것이 눈에 얼핏 들어왔다. 사내의 가방과 함께 사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반으로 접힌 메모를 서둘러 펼쳐 보았다. 낯익은 글씨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상미가 남긴 원고를 놓고 갑니다. 이제 그 원고를 마무리할 사람을 하나 남겨 놓는 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상미, 아니, 당신의 은정을 이해하기 위해 살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당신에게 남깁니다. 이제 모든 것은 남은 자의 몫입니다. 그래요. 나의 상미가 바로 당신의 은정입니다. 이제는 알게 되었겠지만, 당신의 은정을 대신해 내가 知人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 당사자입니다.


이 산을 넘으면 조그만 고아원이 하나 있을 겁니다. 내 어머니가 계신 곳입니다. 거기에 당신의 아이가 있습니다. 아니죠. 당신과 은정의 아이가 있습니다. 은정은 당신이 어디론가 떠난 뒤에야 당신의 아이를 임신했던 사실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나중에야 당신이 외항선을 탄 것을 알았겠지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랍니다.


처음에는 당신을 여기서 죽이고, 당신의 아이도 죽이고, 나도 죽을 작정이었습니다. 당신의 목을 조르다가 술에 취해 잠든 고뇌에 찬 당신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나와 상미가 지내 온 무겁고 어두운 시간의 질감을 그대로 당신에게 남겨 놓는 것도 괜찮은 보복 중의 하나라는 것을.


굳이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인다면 첫눈 때문이라고 해둡시다. 어제 밤 갑작스런 요의(尿意)를 느껴서 산막 밖으로 나갔습니다. 눈이 내리는 한복판에서 소변을 보다 문득 바라본 세상은 온통 깨끗이 빨아 빨랫줄에 널어놓은 아기 기저귀 같았습니다. 우리들의 지난했던 삶도 삶아서 빨아 널은 기저귀처럼 다시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을까요?


어쨌든 상미는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결국 당신을 찾고야 말았더군요. 모든 게 예정된 일이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나와 당신이 만날 수 있었던 거겠지요. 여기 상미의 일기와 쓰다만 원고를 남깁니다. 이제 그것은 남은 당신의 몫입니다.


知人.






나는 사내가 놓고 간 종이뭉치를 서둘러 뜯었다. 포장지 귀퉁이가 찢겨지며 원고지 묶음들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내 습작노트가 바닥으로 흩어졌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대학노트를 보자, 목이 울컥 멨다. 나는 내 예전 습작들과 사내의 상미이자 나의 은정이 쓴 작품들을 정신없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소설은 내 습작들의 연장선에서 시작되고 다시 연장선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임종을 앞 둔 코끼리가 그들 종족의 무덤을 찾아가듯 그렇게 내가 걸어왔고, 이제 앞으로 걸아 가야 할 길을 선명하게 그려놓고 있었다.


나는 어지러운 정신을 추스르며 얼기설기 판자를 덧붙여 놓은 움막의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눈은 그쳐 있었다. 내린 눈은 무릎까지 깊이 잠겼다. 눈 위로 사내의 것이 분명한 발자국이 구덩이를 이루며 패여 있었다. 발자국은 어지럽게 늘어져 사내와 내가 왔던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십여 호나 될까 싶은 인가 사이에 교회처럼 생긴 건물 한 채가 고성(孤城)처럼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이들이 개미처럼 꼬물거리며 마당에 내린 눈을 치우고 있었다.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눈을 몰고 와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지는 언덕에 서서 바보처럼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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