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실마리를 푸는 열쇠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듯이. 오늘 따라 나는 잘 보지 않던 TV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낯익은 연예인들과 인기인들이 나와 문제를 푸는 퀴즈프로였는데, 나와 양희, 세영은 문제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바탕 소란이 끝나고 그 프로그램 말미에 시청자를 위한 퀴즈가 있었다. 늘 그렇듯 퀴즈는 누구나 알아맞힐 수 있는 쉬운 문제였다. 문제를 낸 후에 답장을 보낼 인터넷 홈페이지의 주소를 알려 주었다. 그런데 그 주소를 놓고 양희와 세영이 서로 의견이 달랐다.


"com으로 끝났다고 분명히 말했단 말이야."


양희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먼저 얘기했고, 세영도 질세라 대꾸했다.


"co.kr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야.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더욱 확실하지 않겠어? 언니의 귀보다는 내 눈이 더 정확하다고."


둘의 다툼은 계속되었고, 그 불똥은 나와 초혜에게로 튀었다. 그냥 퀴즈문제에만 정신을 팔고 있던 나와 가게를 청소하고 있던 초혜는 잘 듣거나 보지 못했다는 까닭으로 졸지에 장님과 귀머거리로 매도되어 버렸고,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보자는 것으로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 머리에는 뭔가 꺼림칙하고 찝찝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치 안개가 낀 듯, 목욕을 마친 후 깜빡 잊고 면도를 하지 않고 나온 것처럼, 당구장에다 담배나 라이터를 두고 나온 것처럼 무언가 허전하고 답답한 것이 머리를 짓눌렀다.


그때 정전된 뒤 갑자기 불이 들어온 것처럼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인터넷'이라는 단어였다.


인터넷 이메일!


형이 죽기 전에 지광태에게 끌려간 지하실에서 말했었지. 노법사와의 연락은 이메일을 통해서였다고. 그래 그거야. 형의 이메일. 맞아, 그 이메일을 열어 본다면 어떤 실마리나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지 몰라. 나는 새로운 기대감에 온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내 연락을 받은 강 형사는 허겁지겁 달려왔다. 이미 정년퇴직을 한 사람을 보고 형사라 부르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지만 특별히 부를만한 다른 호칭도 없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 내가 편했고, 강 형사 또한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이메일이 어쨌다고?"


자리에 앉아마자 강 형사는 먼저 묻기부터 했다. 강 형사의 눈빛은 다시 생기에 젖어 번뜩였다. 고목나무에 물이 오르듯 강 형사는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형이 죽기 전에 저에게 얘기하던 중에 이메일에 대한 언급이 있었어요. 강연이나 설교 원고를 형이 직접 쓴 것이 아니고 노법사가 작성한 것을 이메일을 통해 받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문득 났어요."


"그 이메일이라는 것은 인터넷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아닌가?


"맞습니다. 하지만 형이 개설한 이메일은 찾았지만 도무지 비밀번호를 알 수가 없어서 강 형사님께 연락을 드린 겁니다."


"자네가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아나?"


"강 형사님도... 이럴 때는 왜 이리 둔하십니까? 사이버수사대라고... 그쪽에 아는 사람이 혹시 없나요? 거길 통하면 쉽게 해결될 거 같은데 말이죠."


"그렇겠군. 하지만 사이버 수사대에서 쉽게 그걸 알려주려고 할까?"


"그러니까 강 형사님 후배 중에 현역에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죠. 일단 그 이메일을 찾아 열어보면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을지도 모르죠."


"좋아. 한 번 해 보자고."


처음 이 사건에 뛰어들 때만 해도 강 형사는 패기에 넘치고 자신만만했었다.


하지만 난숙에 대한 재판과정과 천현중 일당에 대한 편파적인 재판. 법의 형평성 상실과 수사의 정체현상. 이런 모든 것들이 강 형사로 하여금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게다가 사건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미궁으로 빠져들면서 강 형사 역시 의욕을 잃고 있었다.


현직에서 벗어난 지금에는 사건의 추이나 수사상황 등도 한 다리 건너 입수될 뿐만 아니라, 저희들끼리 쉬쉬하는 바람에 강 형사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다.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던 계장도 개 닭 쳐다보듯이 하고, 집에서는 집대로 노인네가 집에서 쉴 것이지 나돈다고 아내나 자식들의 성화도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어쨌든 강 형사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럭비선수처럼 앞으로 달려갈 채비를 했다.


"너무 기대는 갖지 마십시오. 막상 열어보면 아무 것도 안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강 형사에게 너무 기대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미리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말과는 달리 잔뜩 기대감으로 충만 되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술래 없는 숨바꼭질 같거든. '못 찾겠다. 꾀꼬리!'라도 외쳐야 할 술래는 온 데 간 데 없고, 숨어있어야 할 아이들이 오히려 술래를 찾아 나선 느낌이야. 정작 술래는 집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말이야."


강 형사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게를 나갔다. 강 형사가 열어젖힌 가게 문을 통해 어둡고 습한 밖의 공기가 왈칵 밀려들었다.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밖은 술래잡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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